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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인 패션

천재라 불리운 패션 디자이너 , 영화 "이브 생 로랑 " (Yves Saint Laurent)", 그의 천재성은 영감과 노력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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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새로운 고객 창출과 끊임 없는 트렌드를 생산해 내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20세기 초.. 패션 산업은 많은 스타 패션 디자이너를 창조해 내었다. 

스타 패션 디자이너로는 20세기 초의 샤넬과 크리스천 디올, 스키야빠렐리를 시작으로 

이브 생 로랑 , 쿠레주, 랄프 로렌, 조르지오 아르마니 , 베르사체에서 

알렉산더 맥퀸, 안나수이 , 크리스토퍼 발렌시아가 , 벳시 존슨 , 돈나 카란등등 

세상의 브랜드 네이밍 만큼 많은 스타처럼 등장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러나 패션디자이너의 완전체이면서 천재라고 불리는 디자이너들은 몇 명되지 않는다. 

크리스천 디올, 스키야 빠렐리 , 알렉산더 맥퀸, 그리고 이브 생 로랑 ...

 

50년동안 천재라고 불리면서 세상의 패션을 흔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1936년 8월 알제리에서 태어난 이브 생 로랑은 1953년 크리스천 디올에 입사하면서 

패션을 창조해내고 유행시키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1957년 크리스천 디올이 사망하자 23세의 젊은 나이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이 된다.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얼마뒤 입대를 하게 되는 그는 그 후 동성애적인 성향으로 군대에서 성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발병한 '조울증'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면서 

때로는 영감의 원천으로 때로는 정신적인 피폐로 그의 삶을 이끌게 된다. 

 

 

 

 

그의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 ..

첫 만남에서 부터 서로에게 강렬한 호감과 사랑을 느끼게 된 둘은 이브 생 로랑이 사망할때 까지 이어지며 

인생의 동반자로써 이브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의 파트너로써

때로는 미친듯이 사랑하며 때로는 미친듯이 미워하고 또 미친듯이 혐오하면서도 또 미친듯이 그리워하게 된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드라마틱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다. 

바로 2010년의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와 

2014년의 "이브 생 로랑 "

전작이 본인들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라면 

후작은 프랑스영화가 그들의 사랑과 업적을 기리면서 만든 추모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일년에 2번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 

패션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생각과 트렌드 그리고 새로운 창조와 깊이를 담은 컬렉션을 발표한다. 

세계 주요 패션 도시인 밀라노, 런던, 파리 , 뉴욕과 현재는 서울, 동경, 북경에서도 컬렉션이 발표되기도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패션의 도시는 파리이다. 

그 파리를 가장 아름답고 혁신적인 패션으로 돋보이게 만든 디자이너는 바로 이브 생 로랑이었다. 

 

그는 영감을 찾기 위해 그의 영혼 끝까지 미친듯이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찾아 헤매었으며 

깊이있는 사상과 사유를 담기위해 수 많은 예술인들과 교류했다. 

그에 따른 결과로 50년동안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은 비슷비슷한 느낌이 없이 늘 새롭고 

혁신적이었으며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노스탤리지어가 가득했다. 

 

 

 

50년동안 천재라고 불리면서 세상의 패션을 흔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이브 생 로랑'은 

그의 평생의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의 고독한 감상으로 시작된다. 

감독은 자릴 라스페르 , 이브 생 로랑역은 피에르 니네이 , 피에르 역은 기욤 갈리엔,

이브 생 로랑의 뮤즈인 빅투아르는 샬롯 르 본이 열연을 펼쳤다. 

 

<<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면 

영화 "이브 생 로랑"의 트레일러를 감상하실 수 있다. >> 

 

 

 

어린 시절 카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이브 생 로랑은 

그의 개인적인 스타일링에서도 나타난다. 

카톨릭적인 보수적이면서도 격식을 차린 슈트와 

고급스럽고 엣지를 갖춘 일상복들은 

목까지 채우는 프론트 단추처럼 소매끝까지 채우는 커프스 단추처럼 

깔끔하고 단정하면서 귀족스럽다.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유년기 시절부터 

어머니와 여동생등 주변의 여성들의 패션과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는 스타일링을 직접 해주었던 그는 

60년대 ,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도 

시대를 반영한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혁신적으로 표현했다. 

 

대표작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 된 몬드리안 룩이 있지만 

독디루이 개인적으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턱시도 스타일을 여성스럽게 변형시켜 

여성들로 하여금 "판타롱 팬츠" 스타일을 받아들이도록 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일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한 70년대 '턱시도" 스타일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한 70년대 '턱시도" 스타일 
런웨이가끝나고 수 많은 관객들에 둘러싸인 영광의 순간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같이 일하는 장인들을 대했다는 이브 생 로랑

디자인을 할대는 정장 슈트차림으로 

가봉이나 기타 컨펌을 할때는 화이트 가운을 입은 그의 모습은 

패션 디자이너라면 이런 루틴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컬렉션을 준비하는 이브 생 로랑의 작업실
인터뷰를 하는 20대 젊은 시절의 이브 생 로랑 

 

 

 

80년대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 
가장 획기적인 컬렉션 중의 하나인 "몬드리안" 룩 
가장 획기적인 컬렉션 중의 하나인 "몬드리안" 룩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한 이브 생 로랑 
그의 평생의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 
90년대 컬렉션을 마친 직후 모델들과 함께 한 이브 생 로랑 
베티 카티루스가 입은 턱시도 스타일 

 

가장 획기적인 컬렉션 중의 하나인 "몬드리안" 룩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절친인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의 로고와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이 떠난 이브 생 로랑 

몇 명의 디렉터가 왔다가 떠나고 지금은 에디 슬리먼이 디렉팅을 하고 있다. 

에디 슬리먼 특유의 "쫄딱"함과 

감히 "이브"를 뺀 "생로랑"으로 브랜드 네이밍도 바꾸어 버렸지만 

..

그래서인가 ?

독디루이는 여전히 클래식하고 혁신적이었으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드러낸 예전의 "이브 생 로랑" 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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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 , F/W SAINT  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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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천재성은 영감과 노력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

<< BY 독디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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